체코는 면적이 크지 않아, 수도인 프라하에 머물면서 당일 치기로 주변 도시를 다녀오기가 좋다. 나 또한 프라하 한 달 살기를 하며 근교의 여러 도시들을 여행했다. 다양한 체코 여행지 중에 내가 좋아하는 도시인 카를로비바리, 브르노, 체스키 크롬로프를 다녀온 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온천수의 도시, 카를로비바리
체코의 서부 지역에 위치한 카를로비바리는, 체코어로 '카를의 온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겸 보헤미아 국왕인 카를 4세가 사냥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아픈 사슴이 온천수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보고 이곳을 '카를의 온천'이라고 이름 지었다. 나는 프라하에서 한 달 살기를 하던 중,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강력 추천으로 이 도시를 다녀왔다. 프라하에서 기차나 버스로 갈 수 있는데, 기차를 탈 경우엔 카를로비바리 역에서 구시가지까지 다시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다. 따라서 구시가지 중심지에 바로 내릴 수 있는 버스를 타는 것을 추천한다. 프라하 센트럴 버스 터미널에서 탑승 시, 약 2시간이 소요되며, 나는 레지오젯 버스를 편도 7유로에 예약했다. 버스는 일찍 예약할수록 저렴하며, 가끔 특가 티켓이 오픈되기도 하기 때문에 수시로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카를로비바리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은 '콜로나다'이다. 온천수가 나오는 곳을 의미하며, 이곳엔 총 5개의 콜로나다가 있다. 온천수에는 40가지가 넘는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콜로나다마다 그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온천수의 온도와 맛이 모두 다르다. 1912년에 지어진 사도바 콜로나다는 공원 안에 있어서 파크 콜로나다라고도 불린다. 정교한 목조 구조로 되어 있어 아늑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공원에 있기 때문에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브리지델니 콜로나다는 핫 스프링 콜라나다라고도 불린다. 가장 뜨거운 온천이기 때문인데, 그 온도가 최대 72도이다. 신고전주의와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되어 역사적, 건축학적 의미가 큰 곳이기도 하다. 특히 유리와 철로 만들어진 대형 파빌리온에서 온천수가 솟구치는 것을 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믈린스카 콜로나다에는 무려 132미터의 회랑과 5개의 온천수가 있는데, 카를로비 바리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사암으로 만들어진 12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시가지 곳곳에 온천수를 마실 수 있는 컵인 '라젠스키 포하레크'를 판매한다. 디자인이 다양하고 예뻐서 많은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이 컵을 많이 구입해간다. 온천수 맛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비릿하고 철 냄새가 많이 난다. 온천수를 마시지 않더라도 컵은 기념으로 사가는 것을 추천한다. 걷다 보면, 온천수와 같이 곁들이는 '오플라트키'라는 과자를 판매하는 곳이 많다. 오플라트키는 동그랗고 얇은 과자 사이에 달콤한 크림을 넣은 과자인데, 모양과 맛이 한국의 전병과 비슷하다. 온천수의 비릿한 맛을 중화시켜주기 때문에 꼭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외 성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는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돔의 모양이 독특하고 교회 맞은편에 테이블과 벤치가 있어서 잠시 앉아 쉬어가기 좋다. 디아나 전망대는 카를로비바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까지는 푸니쿨라가 운행되는데, 가격은 왕복 기준으로 약 9천 원이다. 사실 걸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올라가는 길이 꽤 힘들기 때문에 푸니쿨라를 타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에서만 생산되는 전통 허브 리큐어인 베케로브카에 대한 역사, 생산 과정을 볼 수 있는 박물관도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방문하면 베케로브카 리큐어를 시음해 볼 수 있다.
2.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
브르노는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이 도시는 모라비아의 옛 수도이자, 현재는 체코의 여러 국가기관이 있어 사법부의 중심지라고 불린다. 관광지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슈필베르크 성,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성당 등 다양한 명소가 있어 프라하에서 당일 치기 여행지로 추천한다. 프라하에서 기차나 버스로 약 2시간 40분 소요된다. 브르노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은 바로 옆에 나란히 있기 때문에, 기차나 버스 중 더 저렴한 티켓을 예약하면 된다. 나는 가격을 비교해 보고 갈 때는 기차, 올 때는 버스를 이용했다. 참고로 브르노의 관광 명소들은 대부분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구시가지 자유 광장에는 중세 시대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천문 시계이다. 1618년에 발발한 스웨덴과의 30년 전쟁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그 당시 스웨덴 군대가 정오까지 이곳을 점령하지 못하면 퇴각한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자, 브르노 시민들은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냈다. 바로 시계를 정오가 되기 한 시간 전에 미리 울리는 것이었다. 이 종소리를 듣고 스웨덴 군대가 퇴각하면서, 도시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일 11시에 시계에서 구슬이 나오는데,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11시가 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구슬을 기다린다. 브르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진 구 시청사는 1240년에 만들어졌다. 정문에는 유리병 모양의 첨탑 구조물이 있는데, 이곳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첨탑 구조물을 만든 사람은 '안톤 필그람'이라는 조각가인데, 조각을 완성하고 나니 약속한 금액보다 더 적은 돈을 주겠다고 하여 이에 화가 나서 정의의 여신이 있는 중앙 기둥을 휘어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휘어진 중앙 기둥 때문에 이곳이 더 유명해졌다. 구시가지 광장 근처에 있는 그린 광장에서는 신선한 과일과 야채들을 판매하는 장이 열리는데, 그린 마켓 또는 양배추 마켓이라고 불린다. 이곳은 현지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마켓으로, 과일이나 야채가 비교적 저렴하다. 이곳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성 베드로와 성 바울 대성당이 있다. 이곳은 브르노의 상징적인 장소인데, 체코 화폐인 10코루나에 새겨진 성당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를 위해 지은 성당으로, 내부는 섬세한 조각상들과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 내부 입장료는 없으나, 종탑은 입장료가 성인 기준 약 7500원이다. 총 124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며, 아름다운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꼭 올라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슈필베르크 성은 13세기에 지어졌으며,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해있다. 수 세기 동안 왕실의 거주지 및 군사 요새로 사용되다가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구시가지에서 트램을 타고 갈 수 있으며, 성 외부엔 한적한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잠시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아무래도 악명 높은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어두웠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브르노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고, 특히 노을이 질 무렵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3. 동화 속의 아름다운 마을, 체스키크롬로프
체스키크롬로프는 남 보헤미아 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지만, 체코에서 프라하 버금가는 유명한 관광 도시이다.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역사적인 문화재와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하다. 프라하에서 버스로 약 2시간 50분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체코 여행에서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전 시간대의 버스 표는 항상 빠르게 매진되기 때문에 미리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버스 터미널에서 구시가지 가는 길은, 동화 속 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답다. 이 마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라트란 거리에는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골목 사이사이 중세 유럽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들을 둘러보면서 걷다 보면, 관광객이 많이 모여 있는 '이발사의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는 특별한 전설 때문에 유명해졌다. 합스부르크 왕의 아들이 이발사의 딸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정신 질환이 생겨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죽였다. 그 이후 왕자는 자신이 죽인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범인을 색출해 내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억울하게 처형당하자, 이발사는 자신이 딸을 죽인 것이라고 거짓 자백을 해서 왕자에게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발사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다리가 바로 '이발사의 다리'이다. 다리 아래 흐르는 블타바 강과 아름다운 동화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곳은 포토 스폿으로도 유명하다. 다리를 지나 걷다 보면 스보르노스티 광장을 만나게 된다. 형형 색색의 건축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광장이다. 특히 대부분의 투어가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 가운데에는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여러 명소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체스키크롬로프 성이다. 이곳은 특별한 세금으로 지어졌다. 체스키크롬로프는 예전부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프라하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었다. 13세기에 잘츠부르크의 소금을 프라하로 운반해야 하는데, 이 마을에서 소금을 훔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따라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이 도둑들을 쫓아 주는 대신에 상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어들였고, 그 세금으로 성을 지었다고 한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성은, 처음에는 고딕 양식의 요새로 지어졌으나, 추후 르네상스 양식으로 변형이 되었고, 17세기엔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었다. 세 가지 건축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이 지역의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곳이다. 성 외부 정원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지만, 내부와 성 바로크 극장은 가이드 투어로만 입장할 수 있다. 가이드 투어 없이 방문하고 싶다면, 성인 기준 약 17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박물관과 탑을 관람할 수 있다. 탑에 올라가면 마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붉은 벽돌 지붕의 마을 모습과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블타바 강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나는 이 성에서 내려다 본 마을의 풍경이 체코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특히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날에는 뿌연 수채화 그림을 연상케한다. 구시가지 골목 사이로 어디서든 체스키크롬로프 성이 보이는데, 그만큼 이 마을의 상징적인 명소이다. 그 외에도 성 비투스 교회, 에곤 실레 미술관, 밀랍 인형 박물관 등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체코는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동유럽 대표 여행지이다. 면적이 한국의 약 80%로 작기 때문에, 도시 간 거리가 멀지 않아 다양한 곳을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소개한 도시들 말고도 프라하 근교엔 가볼 만한 장소들이 많으니, 체코 여행을 계획한다면 일정을 넉넉하게 확보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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