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테이블-위에-올려진-와인잔에-와인을-따르는-모습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넓은 포도 재배 면적을 자랑하며, 오랜 전통과 현대적인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와인 생산지가 있다. 특히 리오하(Rioja), 페네데스(Penedès), 헤레스(Jerez)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와이너리가 있는 지역이며, 각기 다른 기후와 토양 조건 속에서 독창적인 개성을 가진 술을 만들어낸다. 이번 글에서는 와인을 사랑하는 여행자를 위해 리오하, 페네데스, 헤레스의 와인에 대해 소개하고, 와이너리 체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1. 리오하: 스페인의 대표적인 레드 와인 산지

 리오하(Rioja)는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지 중 하나로, 세계적으로도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곳이다. 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리오하 와인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지역은 에브로(Ebro) 강을 따라 형성된 비옥한 토양과 이상적인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어 술을 만드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테메프라니요(Tempranillo) 품종을 중심으로 한 레드 와인이 주를 이루며, 오랜 숙성을 거친 깊고 복합적인 맛이 특징이다. 리오하 와인의 역사는 2,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은 로마 제국 시절부터 와인을 생산해왔으며, 중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수도원과 귀족들의 지원 아래 양조 기술이 더욱 발전했다. 19세기에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필록세라(포도나무를 괴멸시키는 해충) 피해가 발생하면서 프랑스 양조 기술자들이 이곳으로 이동해 술 제조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곳은 유럽 전역에서 높은 품질의 와인 산지로 인정받게 되었고, 1925년에는 스페인 최초로 원산지 명칭 보호(Denominación de Origen, DO)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후 1991년에는 최상위 등급인 DOCa(Denominación de Origen Calificada)를 획득하며 스페인 와인의 정점에 올랐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이 와인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대형 마켓 진열대에 놓인 여러 제품들 사이에서 비싼 편에 속했고, 레스토랑에서도 고급술로 판매되고 있었다. 술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마셔봐도 부드럽고 풍미가 깊어서, 순례길을 걷는 동안 이 술을 즐겨 마셨다. 리오하 와인은 크게 크리안자(Crianza), 레세르바(Reserva),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로 나뉜다. 이 등급은 숙성 기간과 오크통 사용 여부에 따라 결정되며, 각각의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크리안자는 최소 2년 숙성되며, 이 중 1년 이상을 오크통에서 보낸다. 과일 향이 강조되며, 비교적 가벼운 보디감과 신선한 산미가 특징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레세르바는 최소 3년 숙성되며, 오크통 숙성 기간이 1년 반 이상이다. 그 과정에서 더 복합적인 풍미가 형성되며, 체리, 바닐라, 향신료 노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그란 레세르바는 최소 5년 숙성되며, 2년 이상 오크 을 거친다. 깊고 진한 색감과 부드러운 탄닌, 스모키 향이 특징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풍부한 맛을 선사한다. 이 외에도 일부 와이너리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숙성하는 비냐 비에하스(Viñas Viejas, 오래된 포도나무)나, 현대적인 스타일로 만든 비노 데 아우토르(Vino de Autor)를 출시하기도 한다. 나는 남편과 함께 리오하 와이너리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잊지 못할 경험들을 했다. 먼저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és de Riscal) 와이너리 투어를 했는데, 이곳은 독특한 건축 디자인으로도 유명했다. 투어를 예약하고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미래지향적인 건물이었다. 내부를 둘러보며 리오하 와인의 역사를 배우고, 저장고에서 숙성 중인 술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시음 시간에는 레세르바 와인을 맛보았는데, 체리와 오크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맛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탄닌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두 번째 방문한 로페즈 데 에레디아(López de Heredia) 와이너리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이곳에서는 손으로 직접 병입하고, 수작업으로 라벨을 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한 병 한 병 정성을 들여 만드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크리안자 와인을 시음했는데, 가벼우면서도 신선한 산미가 돋보였다. 와이너리 투어 외에도, 리오하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바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와인을 마신 경험도 잊을 수 없다. 스페인 사람들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한 바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이 대대로 와인을 만들어왔다며 술을 만드는 일에 대한 열정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각자 가장 좋아하는 레세르바 와인을 추천하며,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 페네데스: 스파클링 와인, 카바의 고향

 페네데스(Penedès)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스파클링 와인, 카바(Cava)의 고향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이곳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와 다양한 토양 조건을 갖추고 있어 포도 생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카바는 샴페인과 같은 전통 방식(Método Tradicional)으로 만들어지며, 섬세한 거품과 신선한 과일 향이 특징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스파클링 와인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스페인의 축제나 중요한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술로 여겨진다. 카바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란체스크 라방토스(Francesc Raventós)는 프랑스 샴페인 양조법을 연구한 후, 이를 스페인 페네데스 지역에 도입하여 처음으로 카바를 생산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발포성 술을 만들면서도, 프랑스의 샤르도네(Chardonnay)나 피노 누아(Pinot Noir) 대신 스페인의 토착 품종인 파레야다(Parellada), 마카베오(Macabeo), 차렐로(Xarel·lo)를 사용했다. 이 세 가지 품종은 와인의 기본 블렌딩을 이루며, 각각 산미, 부드러움, 구조감을 담당한다. 이후 1972년, 카바는 공식적으로 원산지 명칭 보호(DO Cava)를 획득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나는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이 샴페인을 처음 접했다. 아무래도 탄산이 있어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파티에서 단맛이 가미된 술을 마셨는데,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카바는 숙성 기간과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가장 일반적인 브루트 나투레(Brut Nature)는 설탕을 첨가하지 않아 순수한 포도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드라이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브루트(Brut)는 소량의 설탕이 첨가되어, 적당한 산미와 균형 잡힌 단맛이 조화를 이루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특히 처음 와인에 입문한 사람들이나,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세미 세코(Semi-Seco)와 두슬세(Dulce)는 각각 중간 정도의 단맛과 높은 당도를 가진 스타일로, 디저트와 함께 즐기기에 좋다. 숙성 기간 또한 맛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데, 숙성이 길어질수록 더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갖게 된다. 나는 스페인 여행 중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면서 페네데스 지역의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가 카바의 매력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코도르뉴(Codorníu) 와이너리였다. 이곳은 처음 상업적으로 카바를 생산한 역사적인 와이너리로, 1551년부터 전통을 이어 온 유서 깊은 곳이다. 투어를 신청하고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지하 셀러가 인상적이었다. 수백만 병의 술이 숙성 중인 모습을 보며, 전통적인 병 발효 방식이 얼마나 정성스럽고 까다로운 과정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음 시간에는 브루트 나투레와 레세르바 카바를 맛보았는데, 한 모금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미세한 버블과 은은한 견과류 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프레시넷(Freixenet) 었다. 이곳에서는 보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술을 생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코도르뉴와 함께 스페인의 대표적인 카바 브랜드 중 하나로,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양조법을 고수하고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병을 거꾸로 세운 후 매일 조금씩 돌려주는 리들링(Riddling) 과정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찌꺼기가 병목으로 모이게 되며, 마지막에는 병 입구를 얼려서 찌꺼기만 제거하는 데고르주망(Dégorgement)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직접 본 후 시음해 보니 그 어떤 것보다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작은 규모의 가족 경영 와이너리인 레카레도(Recaredo)이었다. 대형 와이너리와는 달리, 이곳은 오직 유기농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생산하는 곳이었다. 특히, 그란 레세르바 카바를 시음할 기회가 있었는데, 5년 이상 숙성된 제품을 맛보니 더욱 깊고 고소한 풍미를 가지고 있었다. 주인이 직접 술 한 병을 따서 잔에 따라 주며, 이것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해 주었을 때, 그들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3. 헤레스: 셰리 와인의 본고장

 헤레스(Jerez)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Andalucía) 지역에 위치한 셰리(Sherry) 와인의 본고장으로, 오랜 역사와 독특한 양조 방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셰리 와인은 일반적인 술과는 달리 솔레라(Solera)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숙성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것은 화이트와인을 발효한 후 브랜디를 첨가하여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의 일종이다. 드라이한 피노(Fino)부터 달콤한 페드로 히메네스(Pedro Ximénez)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갖추고 있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경험해 봐야 할 술 중 하나다. 나는 이 와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여행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술을 맛본 이후, 그 풍미에 반해 와이너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헤레스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셰리 와인의 역사는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 1100년경 현재 이 지역에 포도 재배 기술을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로마 시대를 거쳐 아랍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포도 재배와 술 양조 기술이 더욱 발전했다. 그러나 셰리가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스페인이 13세기 기독교 세력에 의해 재정복된 이후다. 16세기 영국과 네덜란드의 무역업자들이 이 술을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스페인의 액체 황금’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특히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이 술을 언급할 정도로, 당시 영국에서 매우 사랑받았다. 셰리 와인은 숙성 방식과 당도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구분된다. 가장 가벼운 스타일인 피노(Fino)는 플로르(Flor)라는 효모층 아래에서 숙성되며, 신선하고 드라이한 맛이 특징이다. 피노보다 조금 더 진한 맛을 가진 아몬틸라도(Amontillado)는 처음에는 플로르 아래에서 숙성되다가, 이후 산화 숙성을 거치면서 견과류 향과 복합적인 풍미를 얻게 된다. 올로로소(Oloroso)는 플로르 없이 바로 산화 숙성을 거친 셰리로, 깊고 진한 색감과 고소한 너트, 캐러멜, 건과일 향이 매력적이다.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제품도 있다. 페드로 히메네스(Pedro Ximénez, PX)는 말린 포도로 만들어져 당도가 높고, 진한 커피, 초콜릿, 건포도 같은 풍미를 지닌다. 이외에도 피노와 PX를 블렌딩한 미디엄(Medium), 올로로소와 PX를 혼합한 크림(Cream) 셰리 등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한다. 내가 헤레스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곤잘레스 비아스(González Byass) 와이너리였다. 이곳은 특별한 브랜드인 ‘틸라 페페(Tío Pepe)’로 유명한 곳으로, 전통적인 양조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나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는데, 가이드를 따라 내부를 둘러보며 솔레라 시스템이 적용된 술의 숙성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수십 개의 오크 배럴이 피라미드 형태로 쌓여 있고, 오래된 배럴에서 새로운 배럴로 와인을 섞어가며 숙성하는 이 독특한 방식은 정말 흥미로웠다. 시음 시간에는 가장 유명한 피노 셰리인 틸라 페페를 맛보았는데, 드라이한 맛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보데가 라스 마두라스(Bodega Lustau)였다. 이곳은 다양한 스타일의 술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로, 특히 아몬틸라도와 올로로소 셰리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시음 세션에서는 올로로소 셰리를 마셨는데, 바닐라와 견과류 향이 풍부하게 퍼지며 굉장히 깊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이드가 시음을 할 때, 조금씩 음미하며 향과 맛을 천천히 느껴보라고 조언했는데, 확실히 일반 와인과는 다른 독특한 풍미가 매력적이었다. 마지막으로 페네데스에서처럼 소규모 가족 운영 와이너리인 보데가 트래디시온(Bodega Tradición)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최소 20년 이상 숙성된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오래된 오크 배럴에서 숙성된 술에서 나는 깊은 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30년 숙성된 PX 셰리를 마셨을 때는 그 진한 단맛과 크리미한 질감이 마치 디저트처럼 느껴졌다. 한 모금 마신 후 입안에서 퍼지는 건포도, 초콜릿, 무화과 향이 정말 황홀했다.

 스페인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로, 지역마다 개성이 뚜렷한 술을 생산한다. 리오하에서는 깊고 복합적인 레드 와인을, 페네데스에서는 청량한 카바를, 헤레스에서는 독특한 셰리 와인을 경험할 수 있다. 각 지역의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해 시음하고, 지역 음식과 페어링 하며 와인의 세계를 깊이 탐험해 보는 것은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