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머리가 아팠던 건 예산이었습니다. 8박 9일 일정에 교통비로만 약 160만 원이 나갔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물가가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스위스를 처음 계획하는 분이라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교통비, 도대체 얼마나 드는 걸까요
스위스 여행에서 교통비가 이렇게 많이 든다는 사실, 미리 알고 계셨나요? 스위스패스(Swiss Pass)란 스위스 내 기차, 버스, 유람선을 일정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교통권입니다. 단순히 열차 패스가 아니라 박물관 무료 입장이나 산악열차·케이블카 할인 혜택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스위스를 여러 지역으로 돌아다닐 계획이라면 웬만하면 구입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스위스패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연속 패스(Consecutive Pass)란 구입한 기간 동안 매일 연속으로 사용하는 방식이고, 플렉스 패스(Flex Pass)란 한 달 안에서 원하는 날짜를 골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매일 이동하지 않는 일정이라면 플렉스 패스가 훨씬 실용적입니다. 플렉스 패스는 모바일로 사용 당일 개시하면 되니 편의성도 좋은 편이고요. 참고로 만 25세 이하라면 유스 할인(Youth Discount)이 적용되어 30%를 절약할 수 있으니 해당되는 분들은 꼭 확인해보세요.
저는 8박 9일 동안 교통비로 약 160만 원을 썼습니다. 스위스패스 외에도 케이블카나 곤돌라처럼 패스가 적용되지 않는 구간이 생각보다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그린델발트 피르스트(First) 곤돌라 패키지나 핑슈텍(Fischbächli) 왕복 케이블카 요금은 별도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스위스 연방 철도청인 SBB 공식 사이트에서 패스 종류별 포함 구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출처: SBB 스위스 연방 철도)
열차 시간표 역시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인터라켄에서 루체른으로 이동하는 날 공사로 열차가 갑자기 운행 중단되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스위스는 유럽 내에서도 교통이 정확하기로 유명하지만, 이런 돌발 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스케줄을 너무 빡빡하게 잡는 것은 위험합니다. 여유 시간을 한두 시간씩 확보해두는 게 훨씬 마음 편합니다.
물가, 어떻게 버텨야 할까요
스위스의 물가는 실제로 체감하기 전까지는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제가 언니와 함께 인터라켄의 한 레스토랑에서 포크 커틀릿과 퐁듀 세트를 주문했을 때, 계산서를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두 사람이 약 16만 원이 나왔는데, 포크 커틀릿은 냉동 제품이었고 곁들여 나온 감자튀김과 야채볶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 이후로는 주방을 사용할 수 있는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바꾸고 대부분의 식사를 직접 해결했습니다.
스위스 현지 마트인 쿱(Coop)이나 미그로(Migros)를 적극 활용하면 식비를 꽤 줄일 수 있습니다. 마트 물가 자체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 품목도 있습니다. 버섯 한 팩이 4천 원대, 크루아상 하나가 약 1,300원, 와인은 14,000~15,000원 선에서 살 수 있습니다. 반면 외식 단가는 인건비가 더해지면서 가격이 급격히 올라갑니다. 파스타 한 그릇에 3~4만 원, 한식당 김치찌개 한 그릇에 35,000원이라는 현실을 마주하면 마트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스위스 마트에서 제가 특히 추천하는 품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허브티: 약 1,400원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가벼워서 기념품으로 딱 좋습니다.
- 모차렐라 치즈: 낙농업이 발달한 스위스답게 신선하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 냉동 카레 레토르트: 마트 안 전자레인지에 바로 돌려서 먹을 수 있어 편리하고, 맛도 꽤 괜찮습니다.
- 과일 파이: 물컹한 식감에 달달한 맛이 중독성 있어서 스위스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먹었습니다.
- 키이슈(Kirschwasser) 초콜릿: 안에 알코올이 들어있는 스위스식 초콜릿으로 술을 좋아하는 분께 드리는 기념품으로 좋습니다.
한 가지 팁을 더 드리자면, 한국에서 한식 재료를 어느 정도 챙겨 가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현지 마트에 신라면이나 안성탕면 같은 한국 라면이 입점해 있긴 하지만, 컵라면 하나에 5,000원 가까이 합니다.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기본 재료를 미리 챙겨 가면 식비를 훨씬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 현지 물가 및 소비자 지수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는 넘베오(Numbeo) 생활비 비교 사이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일까요
스위스 여행기를 찾아보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호텔 조식 자리 배정에서 동양인을 창가쪽이 아닌 구석 자리로 안내한다거나, 레스토랑에서 동양인 손님을 한쪽에 몰아 앉힌다는 경험담입니다. 이른바 암묵적 차별(Implicit Discrimina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특정 집단에 대해 불리한 대우가 반복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저는 직접적인 서비스 차별을 경험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루체른에서 기차역으로 이동하는 중에 어린 학생 무리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스위스 독일어로 무언가를 말하며 조롱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좋은 풍경과 깨끗한 환경을 가진 나라에서 이런 순간을 맞닥뜨리면,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기분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이 스위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같은 호텔에서도 어떤 직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경험이 전혀 달라지기도 합니다. 아델보덴(Adelboden)의 한 호텔에서는 투숙 기간 내내 불편한 방 배정으로 씁쓸한 기억이 남았지만, 같은 호텔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먼저 말을 걸어온 직원 덕분에 기분이 한껏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같은 나라, 심지어 같은 건물에서도 이렇게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여행의 복잡함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그냥 흘려버리기에는 인종차별을 겪은 여행자들의 경험이 너무 많습니다. 스위스를 처음 방문하는 분이라면 이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가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불쾌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거나 자리를 피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스위스는 분명히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그린델발트에서 올려다보는 아이거(Eiger) 북벽, 아델보덴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설산, 브리엔츠 호수 위로 지는 노을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기려면 현실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교통 패스는 일정에 맞게 신중하게 고르고, 외식은 최소화하되 마트를 적극 활용하고, 예상치 못한 불쾌한 상황에도 너무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세요. 예산은 넉넉하게, 마음은 단단하게 챙겨 가시면 스위스는 분명 그 이상을 돌려줄 나라입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WrvccWrZ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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