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길 소개, 짐 준비, 알베르게

배낭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신발은 어떤 걸 신어야 하는지, 체력이 부족하면 못 가는 건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생각하는 분들이 가장 먼저 막히는 지점이 바로 이겁니다. 저도 2019년 10월, 37일 일정을 앞두고 온갖 장비를 알아보며 밤을 샌 적이 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로 도움이 됐던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프랑스길이 '오리지널'인 이유

산티아고 순례길(카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은 목적지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하는 여러 루트의 총칭입니다. 출발지가 다를 뿐 도착 지점은 하나입니다. 이 중 가장 많이 걷는 길이 프랑스 쪽 국경 마을인 생장피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하는 프랑스길(Camino Francés)입니다.

프랑스길이 대표성을 갖게 된 배경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가 깊이 얽혀 있습니다. 중세 시대 이슬람 세력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점령했고, 북부 산악 지대만 겨우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스페인이 수복한 영토를 따라 기독교 순례자들을 유입시키기 위해 공식 순례 루트로 지정된 것이 오늘날 프랑스길의 출발점입니다. 레콩키스타(Reconquista)란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긴 이베리아 반도를 기독교 국가들이 되찾는 역사적 과정을 뜻합니다. 이 과정에서 산티아고 성인이 백마를 타고 나타나 무어인(이슬람 군)을 무찔렀다는 전설이 생겨났고, 팜플로나(Pamplona), 부르고스(Burgos), 레온(León) 등 당시 탈환된 도시들이 프랑스길 위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걸어보면 이 역사의 흔적이 생각보다 훨씬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부르고스 대성당이나 레온의 산 이시도로 성당 앞에 서면, 단순한 트레킹이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제가 프랑스길을 처음 추천받았을 때 '그냥 가장 많이 걷는 길이니까'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걸으면서는 역사 공부를 따로 해오지 않은 걸 꽤 후회했습니다.

포르투갈길(Camino Portugués)은 포르투(Porto)에서 출발해 산티아고로 향하는 루트로, 내륙 코스와 해안 코스로 나뉩니다. 최근 해안을 따라 걷는 코스타(Costa) 루트가 조망이 좋다는 이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만 리스본부터 포르투까지 구간은 인프라 정비가 아직 덜 되어 있어, 대부분은 포르투에서 출발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처음이라면 역사적 유산이 집중된 프랑스길을 먼저 경험하고, 두 번째에 포르투갈길을 고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라고 봅니다.

한국인이 유독 많이 찾는 이유, 그리고 최근 달라진 연령층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 통계를 집계하는 기관인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Oficina del Peregrino)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순례자 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도 전 세계 순위 10위 안팎을 유지하고 있는데, 유럽이 아닌 나라에서 이 정도 수치가 나오는 건 실제로 스페인 현지에서도 화제가 될 만큼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저는 한국 사회 특유의 압박감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끊임없는 경쟁, 성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문화, 그 안에서 서서히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잃어가는 과정.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런 사람들이 느린 걸음으로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는 공간입니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된다는 단순함이, 역설적으로 굉장히 큰 위로가 됩니다.

최근에는 연령층 변화도 눈에 띕니다. 2021년까지는 45세 이하 청년층 비율이 더 높았는데, 최근 통계에서는 중장년층이 이를 역전했습니다. 조기 은퇴와 함께 이제는 단순 패키지 관광이 아닌 의미 있는 여행을 찾는 흐름이 맞물린 결과로 보입니다. 실제로 제가 걸을 때도 50~60대 한국 분들을 꽤 많이 만났고, 퇴직 후 한 달 넘게 길을 걷는 분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전 세계 기준으로는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합니다. 꼭 젊어야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60대 이하라면,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없는 체력이면 충분히 도전 가능합니다.

짐 준비와 알베르게 이용, 실제로 겪어보니

순례길 준비에서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이 짐입니다. 짐은 무조건 적게 가져가야 합니다. 저는 프랑스길을 걸으면서 레온, 부르고스 같은 대도시를 여러 차례 지났는데, 필요한 물품은 대부분 현지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10월 중순 날씨 변화가 생각보다 커서 방한 용품을 현지에서 따로 구입했는데, 이런 상황이 생각보다 자주 생깁니다.

배낭 무게가 부담되면 트랜스퍼 서비스(Transfer Service, 일명 배낭 택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트랜스퍼 서비스란 현재 숙소에서 다음 알베르게까지 배낭을 대신 운반해주는 사설 서비스를 말합니다. 알베르게(Albergue)는 순례자 전용 저렴한 숙소로, 일반적으로 도미토리 형태의 공용 침실을 사용합니다. 알베르게에서 봉투에 목적지, 연락처, 금액을 넣어두면 업체가 와서 가져갑니다. 프랑스길 기준으로는 대부분의 구간에서 이용 가능하고, 현지 우체국도 운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비용이 구간당 10유로 이상 발생하고, 37일 코스를 전부 이용하면 예산이 상당히 불어납니다. 저는 체력이 된다면 배낭을 직접 메고 걷는 편을 권하고 싶습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걷는 과정 자체에서 뭔가를 느끼게 되거든요. 다만 몸이 너무 힘들 때 억지로 버티는 건 의미 없습니다. 왜 이 길을 걷는지가 핵심이지, 배낭을 매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신발은 의외로 많은 분들이 잘못 선택합니다. 일반적으로 비싼 등산화가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파리 데카트론(Decathlon) 매장에서 비교적 저렴한 트레킹화를 구입했는데, 발에 잘 맞는 신발이 최고였습니다. 단단한 등산화보다 발이 편한 부드러운 신발이 장거리에 더 유리하다는 걸 직접 걸어보고 나서야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알베르게 에티켓에 대해서는 솔직히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저녁에 공용 공간에서 여럿이 모여 크게 떠들며 술을 마시는 장면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꽤 불쾌했습니다. 알베르게는 수십 명의 순례자가 함께 쉬는 공간입니다. 취침 시간 준수, 공용 공간 정리, 조용한 대화.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런 기본 규칙이 더 중요해집니다.

순례자 증서인 콤포스텔라(Compostela)를 받으려면 최소 100km를 걸어야 합니다. 콤포스텔라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발급하는 공식 순례 완주 증서를 말합니다. 이 기준 때문에 프랑스길에서는 사리아(Sarria)가 출발지로 가장 많이 언급되고, 포르투갈길에서는 뚜이(Tui)가 그 역할을 합니다.

순례 준비 전 체크할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발: 비싼 등산화보다 자신의 발에 잘 맞는 부드러운 트레킹화를 선택할 것. 현지 구입도 가능합니다.
  1. 배낭 무게: 가능하면 7kg 이하로 최소화. 대도시(레온, 부르고스 등)에서 필요한 물품은 현지 조달이 가능합니다.
  1. 계절: 초보자는 봄·가을 추천. 여름은 혹서, 겨울은 일부 구간 통행 제한이 생길 수 있습니다.
  1. 코스 선택: 풀코스(생장 출발, 약 800km, 35~40일)가 부담스럽다면 사리아에서 100km 구간만 걸어도 됩니다.
  1. 알베르게 예약: 성수기(봄·여름)에는 사전 예약이 필수. 비성수기는 당일 입실도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적인 목적이 아니어도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곳입니다. 다만 그 길이 가진 역사와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고 가면, 같은 길을 걸어도 경험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짐을 줄이고, 신발에 신경을 덜 쓰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는게 어떨까요?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S1xYi42m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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