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여행 (물가,치안,에티켓,트레킹)

여름 휴가 시즌이 다가오면 해마다 같은 고민을 합니다. 동남아는 덥고, 유럽은 비싸고. 그 사이에서 어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다가 저는 스페인 여행 중 무더위에 지쳐 무작정 검색하다 조지아행 티켓을 끊었습니다. 2019년 8월의 일이었는데, 그 선택이 제가 지금껏 한 여행 결정 중 가장 잘한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지아는 한국인에게 여전히 낯선 이름이지만, 알면 알수록 강력히 추천하게 되는 곳입니다.

여름에 조지아를 추천하는 이유: 기후와 물가

8월 초 트빌리시의 낮 기온은 약간 더운 편이지만, 밤이 되면 가디건을 꺼내야 할 정도로 서늘해집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한국의 여름 휴가 성수기인 7월 말~8월 초는 어느 인기 여행지를 가도 폭염 속에서 관광을 해야 하는데, 조지아는 그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코카서스산맥(Caucasus Mountains)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나라 북쪽을 감싸고 있어 여름에도 온도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코카서스산맥이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뻗어 있는 동서 방향의 산맥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물가 이야기를 빼면 섭섭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레스토랑을 자주 이용했는데, 둘이서 메뉴 세 가지를 시켜도 20달러가 넘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보면 거의 정확합니다. 트빌리시 도심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케이블카인 푸니쿨라(Funicular)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보는 데 드는 비용이, 서울 시내 카페 한 곳에서 쓰는 돈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었습니다. 푸니쿨라란 경사진 언덕에 설치된 케이블 탑승 수단으로, 트빌리시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운행되어온 도시의 상징 같은 교통수단입니다.

처음엔 일주일만 머물 계획이었는데, 결국 40일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도시 자체가 질리지 않습니다.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유럽 소도시 분위기가 있고, 치안도 나쁘지 않아 밤에 혼자 걸어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코카서스 트레킹의 현실: 주타와 트루소 밸리

조지아 트레킹 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주타 트레킹(Juta Trekking)입니다. 주타 마을에서 출발해 차우키산을 바라보며 걷는 코스인데, 난이도가 높지 않아 접근성이 좋다는 평이 많습니다. 저도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생각했다가, 초반 오르막에서 제대로 고생했습니다. "쉬운 코스"라는 표현은 등산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사람 기준이라는 걸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트레킹 전에 알아두어야 할 현실적인 정보들이 있습니다.

  1. 주타 마을까지 일반 차량으로는 접근이 어려울 수 있으며, 비가 많이 온 직후에는 현지 주민의 사륜구동 차량으로 갈아타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2. 산악 지역 날씨는 1시간 단위로 바뀔 수 있어, 맑은 날 출발했다가 산 위에서 폭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방수 재킷은 필수입니다.
  3. 6월에는 등산로에 눈이 남아 있는 구간이 있어, 눈 밑으로 강이 흐르는 위험 지형을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4. 낙석이나 산사태 위험 구간에서는 국립공원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즉시 회항을 결정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트루소 밸리(Truso Valley)는 조지아 사람들도 쉽게 가지 못하는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2021년 지정된 국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이산화탄소가 물에 섞여 올라오는 천연 탄산호수인 아바노 미네랄호수(Abano Mineral Lake)가 있습니다. 미네랄 성분 때문에 주변 암석이 붉게 물들어 있어 화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바람이 없는 날에는 호수 주변에 이산화탄소가 고이기 때문에 캠핑 전 반드시 기상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산화탄소(CO₂)란 무색무취의 기체로, 공기보다 무거워 저지대에 쌓이면 산소를 밀어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트루소 밸리에서는 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 뒤라 원래 다니던 길이 강물에 잠겨 버린 것입니다. 코카서스에서는 이런 상황이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길이 없어지면 돌아가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이곳 여행의 기본 자세입니다.

조지아 음식 문화: 카시부터 수프라까지

조지아 음식이 한국인 입맛과 맞을지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험상 이건 기우에 가깝습니다. 특히 카시(Kashi)는 소나 양의 내장과 다리를 8~9시간 끓여 만드는 국물 요리로, 한국의 곰탕과 구조가 매우 비슷합니다. 카시란 조지아식 해장 국물 요리로, 개인 취향에 따라 소금, 다진 마늘, 우유를 더해 먹습니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 새벽부터 준비해 아침에 내놓는 식당이 많습니다.

하차푸리(Khachapuri)는 치즈를 듬뿍 넣어 구운 빵으로, 조지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국민 음식입니다. 지역마다 모양과 맛이 조금씩 달라서, 트빌리시에서 먹은 것과 산골 마을에서 직접 만들어 먹은 것이 분명히 다른 맛이었습니다. 로슈카(Roshka) 마을에서 집주인이 직접 만든 치즈를 넣어 구워준 하차푸리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재료가 단순할수록 진짜 맛이 나온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수프라(Supra)는 조지아 전통 연회를 뜻하는 말입니다. 수프라란 조지아어로 '식탁보'를 의미하는데, 손님을 맞을 때 음식을 가득 차려 대접하는 문화 자체를 가리킵니다. 수프라에서는 집주인의 건배사를 시작으로 가족, 조상,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건배가 이어집니다. 조지아에서 손님을 신이 보낸 선물로 여긴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직접 느꼈습니다. 조지아의 손님 접대 문화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목록(UNESCO ICH)에도 등재 논의가 이어질 만큼 독자적인 문화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지아 와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크베브리(Qvevri)란 오크통 대신 땅 속에 묻는 토기 항아리로, 이 방식으로 와인을 발효·숙성합니다. 조지아의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출처: UNESCO ICH), 8,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늘어나는 한국인 여행자,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조지아를 강력히 추천하면서도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요즘 조지아를 찾는 한국인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지만, 마냥 반기기만 할 수 없는 상황도 함께 생기고 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숙소 에티켓을 지키지 않거나 예약 후 아무 연락 없이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인 여행자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민망했습니다. 저도 여행 중에 한국인 여행자 일행이 식당에서 큰 소리로 떠들며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조지아는 인구가 약 370만 명 수준이고, 특히 산악 마을이나 소도시는 인구 밀도가 매우 낮습니다. 여행자 한 명 한 명의 행동이 현지 주민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선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행지가 조용하고 아름답게 남아 있는 이유는 그 공간을 지켜온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는 점,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조지아 교회와 수도원을 방문할 때는 신부님에게 함부로 말을 걸거나 접촉하지 않는 것이 기본 에티켓입니다.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Gergeti Trinity Church)나 알라베르디 수도원(Alaverdi Monastery) 같은 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도 실제 종교 생활이 이루어지는 성지입니다.

조지아는 코카서스산맥의 야생, 오래된 수도원, 허름해 보이지만 깊은 맛을 가진 음식, 그리고 진심으로 손님을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 멋진 나라입니다. 만약 여름에 휴가를 계획했다면 이 나라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DS7qrfX0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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