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프라우 VIP 패스 활용법 (티켓 발권, 액티비티, 유람선)

스위스 여행에서 교통비를 아끼려면 그냥 구간권을 사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융프라우 VIP 패스라는 이름이 뭔가 관광객용 호갱 상품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직접 써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2일 동안 여덟 군데를 다니며 패스 한 장으로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의 브리엔츠 에메랄드 색의 호수와 그 위에 떠있는 스위스 국기가 달린 이층 유람선

티켓 발권, 이것만 알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융프라우 VIP 패스(Jungfrau VIP Pass)란 융프라우 지역의 산악열차, 케이블카, 푸니쿨라(Funicular·경사면을 오르내리는 케이블 견인 철도)를 구매한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교통 패스입니다. 1일권부터 6일권까지 있어서 여행 일정에 맞게 선택하면 됩니다.

현지에서 정가로 사면 손해입니다. 검색을 하다 보면 동신항운이라는 이름이 계속 등장하는데, 동신항운은 융프라우 철도청(Jungfrau Railways)의 한국 공식 총판으로, 국내 유일의 대리점입니다. 사전에 동신항운 홈페이지에서 할인 쿠폰을 발급받으면 패스 종류와 기간에 따라 적게는 몇만 원, 많게는 그 이상을 아낄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안 쓸 이유가 없는 구조입니다.

발권 시 한 가지 꼭 챙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름 성수기에 융프라우 정상으로 올라가는 아이거 글래처(Eigergletscher)~융프라우요흐 구간은 좌석 예약이 필수입니다. 좌석 예약(Seat Reservation)이란 열차에 탑승할 시간대를 미리 지정하는 절차로, 패스가 있어도 예약 없이는 원하는 시간에 탑승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성수기에는 당일 예약도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오전 첫 시간대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찼습니다. 가능하면 전날 저녁에 미리 잡아두는 걸 강력히 추천합니다.

또한 동신항운 쿠폰으로 VIP 패스를 구매한 경우에만 융프라우 정상에서 무료 컵라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발 3,454m에서 먹는 신라면이 별미라는 건 이미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직접 먹어봤는데, 고산 환경에서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고요.

피르스트 액티비티, 쫄보도 탈 수 있을까요

피르스트(First)는 융프라우 지역에서 액티비티를 즐기고 싶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입니다.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알프스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펼쳐지고, 클리프 워크(Cliff Walk)라는 절벽 끝 철제 다리를 걸으며 아찔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VIP 패스 소지자는 피르스트의 4대 액티비티인 플라이어(Flyer), 마운틴 카트(Mountain Cart), 트로티 바이크(Trottibike), 글라이더(Glider)를 30%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할인이 생각보다 상당합니다. 패스 값을 이 할인 하나로 어느 정도 뽑을 수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저는 세 가지를 모두 탔는데, 각 액티비티의 체감은 꽤 달랐습니다.

  1. 트로티 바이크(Trottibike): 보르트(Bort)에서 그린델발트 마을까지 내려오는 킥보드형 이동 수단입니다. 서서 타기 때문에 아이거 북벽(Eiger Nordwand)을 포함한 마을 전경을 눈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경치만큼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다만 평소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에게만 권합니다. 제 경험상 균형 감각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구간에 따라 경사가 꽤 가파릅니다.
  2. 마운틴 카트(Mountain Cart): 앉아서 타는 카트로 핸들로 속도를 조절하며 내려옵니다. 트로티 바이크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어서 겁이 많은 분들께 더 맞습니다. 경치를 감상하기엔 서서 타는 트로티 바이크가 낫지만, 안전함을 중시한다면 마운틴 카트가 맞는 선택입니다.
  3. 피르스트 플라이어(First Flyer): 정상에서 슈렉펠트(Schreckfeld)까지 시속 80km로 내려오는 집라인입니다. 짜릿함은 세 개 중 단연 최고였지만, 오래 기다린 것에 비해 너무 빨리 끝나버려서 솔직히 조금 허탈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됐는데 실제 탑승은 1분도 안 됩니다.

성수기에는 오전에 가도 대기 줄이 깁니다. 가급적 첫 케이블카 시간에 맞춰 올라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피르스트는 날씨 좋은 날 일정을 잡아야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흐린 날 올라가면 절반의 감동밖에 못 얻습니다.

유람선, 여유롭다는 말이 항상 맞진 않습니다

브리엔츠 호수(Brienzersee) 유람선도 VIP 패스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에메랄드빛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며 이젤발트(Iseltwald) 마을에 닿는 루트인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입니다.

유람선은 여유롭고 낭만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많은데, 제 경험은 조금 달랐습니다. 관광 성수기의 유람선은 대부분 여행자들로 가득 찹니다. 풍경이 좋은 구간에 접어들면 좌석에서 일어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립니다. 저는 가장자리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별다른 양해 없이 제 자리 앞으로 파고들어 촬영하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심지어 인터넷 방송을 켜놓고 크게 떠드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시각이 나뉘는 것 같습니다. 유람선은 어차피 관광 목적이니까 어느 정도 번잡함은 감수해야 한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 저처럼 그 공간에서 최소한의 에티켓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타인의 자리를 침범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방송을 크게 틀어놓는 건 여행의 성격과 관계없이 기본 예절의 문제라고 봅니다. 유람선 탑승 시 자리 선택에 신경 쓰고, 가급적 선미(船尾·배의 뒷부분) 쪽 열린 공간을 확보하면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유람선은 오후 4시 이후로는 시간표가 많이 줄어듭니다. 브리엔츠 호수 유람선 시간표는 BLS AG 공식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하고 일정을 짜는 것을 권합니다.

VIP 패스,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융프라우 정상까지 왕복하는 비용만 해도 한화 40만 원이 넘습니다. VIP 패스 없이 구간권으로만 움직이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움직여보면 이동이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아이거 익스프레스(Eiger Express)는 2020년 개통된 케이블카로, 기존 이동 시간을 47분 단축해주는 노선입니다. 이 노선 하나만 해도 왕복으로 사용하면 상당한 금액이 나옵니다.

융프라우 철도 공식 홈페이지(Jungfrau Railways 공식 사이트)에서 패스별 포함 범위를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느 코스를 얼마나 이용할지 미리 계산해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패스 구매가 합리적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융프라우 지역에 2일 이상 머물고, 정상에 오를 계획이 있다면 VIP 패스는 거의 필수입니다.
  2. 피르스트 액티비티를 한 가지 이상 할 예정이라면 30% 할인만으로도 패스 값의 일부를 회수할 수 있습니다.
  3. 하더쿨룸(Harder Kulm) 전망대, 브리엔츠 유람선, 뱅엔(Wengen)·멘리헨(Männlichen) 구간까지 모두 이용한다면 패스의 가치는 더 올라갑니다.
  4. 반대로 인터라켄에서 하루만 머물고 정상 방문도 계획에 없다면 구간권이 오히려 경제적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2일 동안 움직여보니, VIP 패스 없이 같은 동선을 소화했다면 패스 가격의 두 배 가까이 썼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개인 일정마다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사야 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융프라우 지역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패스 구매를 기본 전제로 일정을 짜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 물가는 여행자 입장에서 살인적이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그 안에서 비용을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쓰려면 사전 준비가 전부입니다. 융프라우 지역에 최소 이틀 이상 머물고 산에 한 번이라도 오를 계획이라면, VIP 패스는 선택이 아니라 출발 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항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유람선처럼 기대와 현실이 다를 수 있는 코스도 있으니, 각 코스별로 미리 정보를 확인하고 동선을 짜는 준비가 여행의 만족도를 훨씬 높여줄 것입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3-C41OWUF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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