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시비우-감시자의눈이라고-불리는-건물옥상의-창문들

 루마니아는 동유럽으로 구분되지만 사실상 유럽의 동남쪽에 있는 국가이다. '로마인들의 땅'이라는 의미인데, 이 지역의 첫 왕국인 다키아 왕국이 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이곳에 로마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의 국명을 가지게 되었다. 특이한 점은, 동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라틴계 민족으로 구성되었으며, 라틴계 언어를 쓴다는 점이다.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지만, 분명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따라서 내가 동유럽 자유여행을 하며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인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브라쇼브, 시비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1.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부쿠레슈티는 1862년부터 루마니아 수도로서, 경제, 문화, 역사의 중심지인 도시이다. 이곳은 중세 시대의 교회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 공산주의 시대의 궁전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건물들이 많다. 옛 건축물과 현대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이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루마니아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체제를 따르게 되었다. 최악의 독재자로 알려진 차우세스쿠에 맞서 1989년에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고, 루마니아에 드디어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오랜 기간 공산주의 체제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부쿠레슈티에는 이 시기에 건설된 역사적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인민궁전이다.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행정 건물로, 독재자 차우세스코가 자신의 권력과 힘을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세금을 투입해서 지은 건물이다. 이 시기에 루마니아 경제는 최악의 상태였는데, 인민궁전 건설은 이곳에 혁명이 일어나게 된 불씨가 되었다. 결국 차우세스쿠는 인민궁전이 다 지어지기 전에 처형당했다. 현재 이곳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인민궁전을 지을 당시에 북한 김일성의 주석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폐쇄적이고 경직된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이와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혁명 광장이 있다. 처음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난 곳으로, 기존에는 '공화국 광장'으로 불렸지만, '혁명 광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루마니아는 약 90% 이상의 사람들이 정교회를 믿는다. 이곳엔 수많은 교회가 있는데, 그중 스타브로폴레오스 교회와 성 안토니 교회를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스타브로폴레오스 교회는 1724년에 지어져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성 안토니 교회는 부쿠레슈티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16세기부터 왕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이다. 성 안토니 교회 바로 옆에 마누크 여인숙이 있다. 루마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숙박업소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구시가지에서 멀지 않아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2. 내가 루마니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 브라쇼브

 나는 동유럽 자유여행을 약 4개월 넘게 했는데, 내가 여행한 많은 도시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 중 하나가 브라쇼브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여행지이기도 하다. 부쿠레슈티에서 기차로 약 2시간 30분 소요된다. 이곳은 12세기에 독일계 사크슨족에 의해 건설되어, 건물들을 보면 독일 특성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루마니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부쿠레슈티는 화려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반면, 브라쇼브는 고풍스럽고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브라쇼브 구시가지의 중심은 시청 광장이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고, 시내 중심지답게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숍이 모여 있다. 광장 중앙에 분수가 있는데, 나는 브라쇼브에 머무는 동안 매일 이곳에 와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분수 앞에 앉아 있으면, 여행 중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청 광장 바로 옆에 블랙 교회가 있는데, 전쟁 당시 화재로 인해 교회 외벽에 그을음이 생겼고, 그 이후 블랙 교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4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브라쇼브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만약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면 카테리나 성문을 추천한다. 16세기에 건설된 이곳은, 브라쇼브의 중세 방어벽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곳이다. 여러 관광지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브란성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라큘라 성'으로 알려진 곳으로, 루마니아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브라쇼브에서 브란성까지는 버스로 약 50분 정도 소요된다. 사실 이곳은 드라큘라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드라큘라 성과 이미지가 비슷해서 유명해졌다. 줄지어 있는 뾰족한 첨탑들과 두꺼운 석벽, 음산한 내부가 드라큘라를 떠올리게 한다. 엄청난 관광지인 만큼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참고로 성 외부는 입장료가 무료이고, 내부는 약 18000원 정도이다. 성 내부는 사람이 너무 많고 볼 것도 많이 없으니, 만약 브란 성을 간다면 성 외부만 보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3. 중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 시비우

 시비우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브라쇼브에서 기차나 버스로 약 2시간 30분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도시가 작아 반나절이면 충분히 구경할 수 있으므로, 브라쇼브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시비우는 중세 유럽의 모습을 잘 간직한 도시로 손꼽히며, 2007년에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시비우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건물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지붕에 있는 창문 모양 때문이다. 창문이 사람의 눈과 비슷한 모양으로 생겼는데, 그래서 '감시자의 눈'이라고 불리고 있다. 공산주의 체제 시기에 사람들은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걷다 보면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거짓말쟁이 다리'로 불리는 철제 다리인데, 거짓말을 하면 다리가 흔들린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많은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어 더 유명해졌다. 시비우에 갔다면 브루켄탈 국립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은 18세기에 설립되었으며, 루마니아에서 가장 역사적이고 중요한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시비우의 상징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인 루터교 대성당도 유명한 관광지이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높은 첨탑과 종탑에서 도시의 아름다운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만약 자연을 좋아한다면 파그라시 산맥을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트래킹 코스, 액티비티가 발달해 있으며, 파그라시 산맥을 따라 이 지역을 지나가는 트란스파그라시안 고속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다. 그 외 역사적인 유물과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브루켄탈 궁전과 호헤그 성도 가볼 만한 관광지이다. 만약 시간 여유가 있다면 외곽에 위치한 아스트라 전통 민속 문화 박물관도 추천한다. 유럽에서 가장 큰 야외 박물관 중 하나이며, 농촌 생활과 관련된 300여 개의 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2025년 1월 1일부터 루마니아가 솅겐 조약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솅겐 조약은 유럽 내 가입국끼리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도록 여권 검사나 국경 통과 절차를 생략해 주는 조약이다. 이로 인해 루마니아로의 여행이 더 쉬워졌다. 올해 동유럽 자유여행을 계획했다면 루마니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