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시골 마을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부다페스트와는 차별화된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지역이다. 이 글에서는 헝가리 시골 마을인 할라쇼크와 에게르, 그리고 호르토바지 평원 국립공원을 통해 이 나라의 진짜 매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할라쇼크: 전통 농촌 체험
헝가리 중부 평야지대에 위치한 할라쇼크(Halászházak)는 유럽 내에서도 전통 농촌 체험지로 알려져 있는 소규모 마을이다. 이곳은 과거 다뉴브강과 인접한 내륙 수로를 따라 어업과 농경이 함께 발달했던 지역이다. '어부의 집들'이라는 지명이 그 기원을 말해준다. 백색 석회로 마감된 외벽과 붉은 기와 지붕의 전통 가옥은, 이곳의 건축미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구조물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 중이다. 마을 곳곳은 19세기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학문적,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내가 이 마을을 방문한 때는 2020년 봄이었다. 남편과 함께 렌터카로 소도시들을 여행하던 중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마을에 도착해서 한국의 검색 사이트 및 구글에서 이 마을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고 했지만, 거의 찾지 못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기에 기대 없이 들렀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되었다. 첫날에는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농장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송아지에게 우유를 먹이고, 닭장을 청소하며 건초를 옮기는 일에 함께했다. 일과 후에는 현지 가족의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되어 수제 수프와 오븐에 구운 빵을 대접받았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정겨운 분위기 덕분에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다음 날에는 지역회관에서 열린 전통문화 축제에 참여했다. 이 행사는 외부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지만, 농장 주인의 초청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행사에서는 직접 만든 과일주, 수제 치즈, 전통 복장을 입은 주민들의 민속 춤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치터(cimbalom)'라는 전통 현악기의 연주는 특히 인상 깊었다. 주민 모두가 하나 되어 축제를 즐기는 모습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공동체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셋째 날에는 마을 외곽에 있는 100년 된 수력 제분소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전통 방식대로 곡물을 갈아 밀가루를 만들고, 이를 이용한 전통 음식 ‘랑고쉬(Lángos)’를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체험이 마련되어 있다. 장작불에 구운 랑고쉬의 풍미는 시내 식당과는 전혀 다른 깊은 맛을 지녔으며, 지역 주민이 오랜 시간에 걸쳐 계승해온 조리법 덕분에 음식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처럼 느껴졌다. 할라쇼크는 헝가리 농촌의 사회적·문화적 자산을 그대로 보존한 지역으로, EU 내 농촌 유산 관리 프로그램의 대상지로 등록되어 있다. 이 마을은 슬로푸드(Slow Food) 운동 및 지속 가능한 관광 자원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정부에서 해당 지역의 전통 농경 문화와 공동체 기반 경제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문화·농업부 공동 기획으로 연간 조사와 보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관광객이 단순히 보고 지나가는 장소가 아니라, 문화적 참여를 통해 현지인의 삶을 체험하는 ‘참여형 여행지’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곳에서는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 하루를 살아볼 수 있다. 하루의 리듬, 공동체의 온기, 전통의 소중함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이 마을이 지닌 진짜 매력이다. 도시의 분주함에 지쳤거나, 새로운 시선을 원한다면 이곳에서의 며칠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2. 에게르: 포도밭 마을의 매력
헝가리 북부에 위치한 에게르(Eger)는 부다페스트에서 약 140km 떨어진 중세풍 도시이다. 인구는 약 5만 명 정도로 아담하지만, 와인 문화의 중심지이자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특히 불의 계곡(Szépasszony-völgy)이라 불리는 와인 저장고 거리가 유명하며, 수십 개의 저장고가 모여 있어 방문객이 자유롭게 시음하고 구입할 수도 있다. 이 지역은 중세 시대부터 포도 재배가 활발했던 곳으로, 토양은 화산재 기반의 미네랄이 풍부해 독특한 와인 맛을 만들어낸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에그리 비카베르'는 EU 원산지 명칭 보호(PDO)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또한 이 지역은 열풍성 토양과 낮은 강수량, 긴 일조 시간 덕분에 포도 재배에 최적화되어 있다. 평균 18도 내외의 연평균 기온이 품질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런 기후·지리적 조건 덕분에 에게르 와인은 깊은 풍미와 복합적인 아로마를 자랑한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간 헝가리 내에서도 프리미엄 와인 시장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곳의 역사는 11세기 초 이슈트반 1세가 주교좌를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552년, 오스만 제국과의 에게르 성 전투에서 시민과 군인들이 힘을 합쳐 침략을 막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승리는 오늘날까지 이 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으로 전해진다. 에게르 성은 현재 복원되어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당시의 전투 모습을 재현한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동부 기차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면 약 2시간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하루에 여러 대가 운행되어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다.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이동 시간과 비용은 비슷하다. 기차 이동은 경치가 아름다워 추천할 만하다. 나는 여행 중에 부다페스트의 북적임을 피해 한적한 곳을 찾다가 이곳을 알게 되었고, 기대 이상의 매력을 느꼈다. 도착하자마자 광장을 둘러보며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과 조용한 골목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첫 번째 기억에 남는 경험은, 불의 계곡 와이너리 방문이었다. 가장 먼저 찾은 'Gál Tibor' 와이너리에서는 에그리 비카베르(Egri Bikavér)라는 헝가리 대표 레드 와인을 시음했다. 농익은 체리 향과 은은한 스파이시함이 인상 깊었다. 그동안 여행 중에 수많은 와이너리를 방문했지만, 이곳만의 특별한 향과 맛이 느껴져서 시음 후에 두 병을 구입했다. 또한 저장고 앞 테라스에 앉아 석양을 오랜 시간 동안 석양을 바라봤는데,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둘째 날에는 포도밭 트레킹을 했다. 계곡 주변 언덕을 따라 포도밭 산책로는 완만하고 걷기 좋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길을 걷던 중 만난 농장 주인에게서 올해 수확한 신선한 청포도를 얻어 맛볼 수 있었는데, 그 상큼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트레킹 도중 마주치는 오래된 석조 창고들과 포도 넝쿨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중세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줬다. 그다음으로 에게르 성 탐방에 나섰다. 성 내에는 전투 기념관과 고고학 전시관,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성 꼭대기 전망대에서는 시내와 멀리 펼쳐진 북부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성 아래로 이어진 지하터널도 체험했는데, 중세 시대 방어용 통로로 쓰였던 곳이다. 손전등 하나 들고 좁은 통로를 걷는 경험은 짜릿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에게르는 작지만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 역사와 문화, 자연과 와인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진정한 힐링과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헝가리의 진짜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은 반드시 들러야 할 여행지이다.
3. 호르토바지 평원 국립공원
호르토바지 평원 국립공원(Hortobágyi Nemzeti Park)은 헝가리 동부에 위치한 유럽 최대 규모의 초원 지역이다. 1973년에 이 나라에서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199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공원의 면적은 약 82,000헥타르에 달하며, 다양한 동식물과 전통적인 유목민 문화로 유명하다. 회색 소, 망아지, 양 떼를 돌보는 치코스(Chikos)들의 삶은 이곳의 상징이다. 호르토바지는 유럽 내 전통 유목 시스템이 보존된 대표적 지역이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모델로 평가받으며, 매년 국제 생태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찾는 곳이다. 공원 관리 체계는 유럽 환경청(EEA) 기준을 따르고 있으며, 생물 다양성 보존과 환경 교육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학문적 가치와 환경적 중요성을 모두 갖춘 지역으로 손꼽힌다. 그 외 아홉 개의 아치가 있는 다리(Nine-Arch Bridge)와 전통적 수로 시설 등은 이곳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손꼽힌다. 부다페스트에서는 동부 기차역(Keleti pályaudvar)에서 데브레첸(Debrecen)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한 후, 버스나 차량으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총 소요 시간은 약 3시간이며, 최소 1박 2일 이상 일정을 계획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가장 먼저 호르토바지 빌리지(Hortobágy Village)에서 전통 민속 박물관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과거 유목민들의 생활상을 자세히 볼 수 있었고, 실제로 사용했던 목축 도구와 전통 복장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박물관 관람 후에는 치코스 쇼를 관람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기수들이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쇼가 끝난 뒤 회색 소를 직접 만져보는 체험도 했는데, 거친 털과 따뜻한 체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둘째 날에는 국립공원 생태탐방 트레킹에 참여했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 초원을 걸으며 다양한 조류와 습지 생태계를 관찰했다. 특히 철새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이동하는 장면은 압도적인 감동을 주었다. 가끔 들려오는 양 떼 방울 소리와 거친 바람 소리만이 초원의 고요를 깨트렸다.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경험은 도시 생활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었다. 셋째 날에는 아홉 개의 아치가 있는 다리를 방문했다. 이 다리는 19세기 중반 상인과 목동들의 주요 교통로로 사용된 곳이다. 아치형 구조물이 초원 위에 부드럽게 이어진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위를 천천히 걸으며 바라본 끝없는 초원과 하늘은,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리 주변에는 소박한 시장이 열리기도 하며, 전통 수공예품과 지역 특산물을 구경할 수 있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봄과 가을에는 철새 관찰 프로그램이, 겨울에는 전통 썰매 체험이 운영돼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생태 보호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있어, 자연과의 교감을 깊게 할 수 있다. 호르토바지 평원 국립공원은 자연, 문화, 인간의 삶이 조화를 이루는 살아 있는 유산이다. 드넓은 초원과 끝없는 하늘, 그리고 자유로운 바람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헝가리의 시골 마을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헝가리인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할라쇼크에서는 농촌 체험과 전통문화의 정서를, 에게르에서는 와인과 역사적 고성을, 호르토바지에서는 대자연과 유목민 전통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었다. 도시 중심의 관광에 지쳤다면, 시골 여행을 통해 보다 깊이 있는 유럽 문화를 체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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