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본섬 안에는 크고 작은 다리가 무려 400개입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도 그냥 흘려들었는데, 직접 캐리어를 끌고 골목을 걸어보고 나서야 그 400개가 얼마나 현실적인 숫자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세 번 다녀온 베네치아, 그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봅니다.
숙소 위치: 산타루치아냐, 메스트레냐
베네치아 여행의 출발점은 거의 항상 산타루치아(Santa Lucia) 기차역입니다. 기차역 문을 나서는 순간 눈앞에 운하가 펼쳐지는데, 그 첫 장면만으로 이미 여행의 절반은 성공한 기분이 듭니다. 저도 세 번 모두 이 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었습니다.
그런데 2024년 9월에 다시 찾았을 때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전에 비해 산타루치아 인근 숙소 가격이 눈에 띄게 올라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내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도 베네치아는 비수기에도 숙박비, 식비, 관광세 모두 한 단계 높은 수준입니다. 관광세(Tassa di soggiorno)란 숙박 시 지방자치단체에 납부하는 세금으로, 베네치아는 이 금액이 다른 이탈리아 도시보다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메스트레(Mestre) 역 근처 숙소를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합니다. 메스트레는 베네치아 본섬 바깥 육지에 위치한 지역으로, 산타루치아까지 기차로 10분 남짓 거리입니다. 중요한 건 메스트레역 출발 교통권 중 산타루치아까지의 기차비가 포함된 통합권이 있어서, 이동 비용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예산이 빠듯하다면 저는 지금은 메스트레 쪽을 더 권하는 편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한 가지는 꼭 지켜야 합니다. 베네치아는 섬 전체가 돌길(포폴라토, Pietra d'Istria)로 이루어져 있고, 기차역에서 멀어질수록 캐리어를 끌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고됩니다. 돌을 깎아 만든 이 이스트리아산 석재 도로는 수백 년 된 것들이 많아 표면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입니다. 짐을 들고 다리를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상당히 소모됩니다. 두 기차역 중 한 곳 근처에 숙소를 잡는 것이 여행의 기본 전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필수 코스: 걸어서 느끼고, 타고 돌아오는 동선
베네치아 관광의 핵심 동선은 산타루치아 기차역에서 출발해 리알토(Rialto) 다리, 산 마르코(San Marco) 광장, 두칼레(Ducale) 궁전, 탄식의 다리, 라 페니체(La Fenice) 극장, 아카데미아(Accademia) 다리 순으로 이어집니다. 갈 때는 걷고, 올 때는 바포레토(Vaporetto)를 타는 방식이 제 경험상 가장 효율적이었습니다.
리알토 다리는 1591년 석조로 완성된 베네치아의 상징입니다. 원래 1180년대에 목조 다리로 시작했지만 화재와 붕괴를 반복한 끝에 지금의 석조 구조물이 세워졌습니다. 직접 걸어보면 관광객이 정말 많아 인증 사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수기에도 마찬가지였으니, 이곳에서 멋진 사진을 건지려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진 스팟은 마지막 코스인 아카데미아 다리가 훨씬 낫습니다.
아카데미아(Accademia) 다리는 아카데미아 미술관 근처에 위치한 목조 다리로, 대운하와 베네치아의 상징적인 돔 지붕인 쿠폴라(Cupola)가 함께 담기는 앵글로 유명합니다. 쿠폴라란 건축물의 반구형 지붕 구조를 뜻하며,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Santa Maria della Salute) 성당의 쿠폴라가 특히 이 뷰에서 잘 보입니다.
제 경험상 리알토 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배경을 깔끔하게 잡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아카데미아 다리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일몰 시간대에 가면 대운하 위로 노을이 반사되는 장면을 담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문 사진작가들도 베네치아 대표 풍경 사진을 이 스팟에서 많이 찍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카데미아 다리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는 바포레토(Vaporetto) 1번 노선을 이용하시길 추천합니다. 바포레토는 베네치아의 수상버스로, 수상 교통의 핵심 이동 수단입니다. 1번 노선은 대운하를 따라 주요 스팟을 모두 통과하는 노선이라, 걸어서 본 풍경을 이번엔 물 위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아에서 산타루치아까지 약 45분에서 50분 정도 소요됩니다. 이미 많이 걸어서 지쳐 있을 타이밍이라, 앉아서 천천히 운하 뷰를 감상하는 이 시간이 저는 베네치아 여행 중 가장 좋았습니다. 이탈리아 관광청의 베네치아 공식 여행 정보에서도 바포레토 노선 관련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산 마르코 광장 인근에서는 플로리안(Florian) 카페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1720년에 문을 열어 현재까지 같은 자리에서 영업 중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중 하나입니다. 핫초코 한 잔에 17~18유로,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는 날에는 커버차지(Coperto) 7유로가 추가됩니다. 커버차지란 이탈리아 식당이나 카페에서 자리 이용 시 부과하는 서비스 요금입니다. 비싸다는 건 압니다만, 저는 이걸 '음료를 제공하는 박물관 입장료'로 받아들이니 오히려 편했습니다.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치, 사법, 행정 기능이 모두 집중된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치면 청와대, 국회, 법원이 한 건물 안에 있었던 셈입니다. 베네치아 고딕(Venetian Gothic)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일반적인 고딕 양식과는 달리 밝고 섬세한 레이스 같은 외관이 특징입니다. 베네치아 고딕이란 동방 문화와 이슬람 건축의 영향을 흡수해 베네치아 특유의 개방성과 화려함을 더한 건축 양식을 말합니다. 직접 보면 무겁지 않고 오히려 러블리하다는 느낌이 먼저 옵니다.
베네치아 여행 전 반드시 알아두면 좋은 실용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바포레토 1번 노선은 아카데미아 정류장에서 산타루치아까지 대운하(Canal Grande) 주요 스팟을 모두 통과합니다. 편도 이동에 45~50분 정도 여유를 잡으세요.
- 아쿠아 알타(Acqua Alta)는 조수 상승으로 인해 도시 저지대가 침수되는 현상입니다. 산 마르코 광장처럼 지대가 낮은 곳이 특히 취약하며, 주로 10월~1월 사이 발생합니다.
- 관광 중심지인 산 마르코 광장, 리알토 다리, 산타루치아 기차역 인근 식당은 음식 품질 대비 가격이 높고 팁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포레토로 조금만 벗어나면 합리적인 가격의 식당을 찾을 수 있습니다.
- 베네치아 본섬 내 다리는 400개 이상이며, 모두 계단식 구조입니다. 무릎이나 발이 좋지 않으신 분은 바포레토 며칠 이용권을 미리 구매해 구간별로 수상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 신발은 반드시 편한 것으로 준비하세요. 쿠션이 없는 신발로 돌길을 하루 종일 걷다 보면 발바닥 통증이 상당합니다.
저는 우기 직전에 베네치아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쿠아 알타가 시작되면서 산 마르코 광장이 완전히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비싼 여행지에서 하루를 숙소에서 보내야 했던 건 지금도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네치아의 아쿠아 알타 현상은 기후변화와 지반 침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식 페이지에서도 이 도시의 보존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방문 시기를 정할 때 10월 이후라면 기상 예보를 꼭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오버투어리즘, 베네치아의 그림자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란 관광객이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지역 환경과 주민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합니다. 베네치아는 이 문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네치아 구도심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지만, 동시에 관광객 과밀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베네치아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리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인구 유출, 물가 상승, 생활 환경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상주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주된 이유입니다.
제가 직접 다녀보니 이 오버투어리즘의 영향이 물가에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납니다. 산 마르코(San Marco) 광장, 리알토(Rialto) 다리, 산타루치아 기차역 근처는 식당, 카페, 숙소 모두 가격이 다른 이탈리아 도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쌉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아쉬웠던 부분인데, 가격에 비해 음식 퀄리티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관광객이 많으니 굳이 품질로 승부할 필요가 없는 거겠죠.
게다가 베네치아는 관광세(Tourist Tax)와 도시세(City Tax)가 다른 도시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관광세란 숙박 시설 이용 시 인당, 1박 기준으로 부과되는 세금이고, 도시세는 지자체가 관광 인프라 유지를 위해 별도로 부과하는 비용입니다. 2024년부터는 당일 치기 관광객에게도 입장료 성격의 요금을 시범 징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로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저로서는, 베네치아는 오래 머무르기에는 부담이 큰 도시였습니다.
베네치아는 분명히 한 번은 가야 하는 도시입니다. 하지만 세 번을 다녀온 제 솔직한 결론은, 미리 알고 가야 돈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는 겁니다. 숙소는 예산에 맞게 메스트레역도 고려하시고, 식사는 관광지 중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훨씬 합리적인 선택지가 생깁니다. 철저히 준비해서 아름다운 베네치아 곳곳을 즐기길 바랍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IdHQaHXc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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